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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기사협회 소식지 해바라기 - 2019년 9월

DNV GL 도면승인센터장 - "국적, 성별 등 특정 조건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아야… 주어진 역할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

 

여성 최연소 팀장’, ‘한국인 최초의 도면승인센터장’. 그에게는 몇 가지 수식어가 따른다. 스스로를 특정 타이틀 안에 가두고 싶지 않다는 그는 묵묵히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을 걷고 있었다.

 

·사진 | 박미래(편집장)

 

Q. 어떤 곳에서 일하고 있나요?

A. 한국해양대학교 기관시스템공학부를 졸업하고 11년째 DNV·GL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DNV·GL은 노르웨이에 본사를 둔 외국계 선급입니다. 선급 인증, 정부대행검사 인증 등 해양 분야는 물론이고 석유 및 가스, 에너지, 디지털솔루션, 식품, 안전보건 등 다양한 검인증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도면승인센터는 선박이 정해진 규칙 및 국제 협약에 적합한지 도면을 검토하는 일을 합니다. DNV·GL부산 도면승인센터는 주로 신조와 자재에 관련한 도면을 검토하며 도면승인센터 내에는 선체나 복원성에 대한 승인, 안전 시스템에 대한 승인, 기계, 전기, 항통장비에 대한 승인분야가 존재하고 크게 세 부서(Project Management / Hull & Stability / Safety & System)가 있습니다.

 

Q. 한국인 최초로 도면승인센터장을 맡게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A. DNV·GL은 직책이 있는 모든 포지션을 충원할 시, 회사 내부 직원들에게 공개 지원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래서 2년 전 도면승인센터 내의 project manager 부서 팀장을 지원해서 맡게 되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내부 지원 절차를 통해 올해 71일부터 센터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전 도면승인센터장은 대개 노르웨이 분이셨습니다.

 

 

 

Q. 4학년 초, 채용연계형 인턴으로 이곳에 입사하게 되셨다고요.

A. 3학년 2학기, KSS해운 LPG선에서 6개월간의 실습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승선을 하고픈 욕심도 있었지만 평소 선급 업무를 매력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중 4학년 여름방학 때 DNV·GL에서 인턴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인턴 기간 동안 거제의 조선소를 다니며 신조 검사관으로 일했고, 4학년 2학기 초에 입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Q.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요.

A. 회사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교육 중 개인의 가치와 회사의 가치에 관한 강연이 있었습니다. 회사가 중시하는 가치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얼마나 맞는지를 알아보는 시간이었는데요. 직원 개개인의 삶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가진 DNV·GL의 철학과,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제 가치관이 일치함을 깨달았고 그 계기로 더 큰 목적의식을 갖고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향후 진로를 고민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현재 몸담고 있거나 지원을 희망하는 회사와 내 삶의 방향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살펴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Q. 성별, 나이 등에서 오는 고충은 없었나요?

A. 작년에 팀장으로서 참석한 출장에서 유럽 지부의 동료들을 앞에 두고 발표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분명 내가 있는 위치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젊은 아시아인 여성이라서 호기심 있게 보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에 위축되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성별, 나이, 국적 등 특정 조건에 나 자신을 가두면 더 이상의 성장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특정 조건에 따르는 편견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겠습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편견이라는 틀 안에 자신을 가두는 순간 해낼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게 됩니다. 여러 가지 편견에 일일이 연연하지 않고, 그저 내게 주어진 역할과 임무에 집중하여 당당히 해내는 용기가 중요하겠습니다.

 

Q. 일과 육아 그리고 학업까지 병행하셨다고요.

A. 얼마 전 부산대 경영대학원 MBA 과정을 마쳤습니다. 일과 육아 그리고 학업을 동시에 해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는데요. 가족 구성원의 배려는 물론 직원 개개인의 삶을 존중해주는 기업 문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사회생활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어려움을 알지만, 상황에 따르는 대안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Q. 승선 시절 함께한 여성 1기사님이 기억에 남으신다고요.

A. 개인 실습 당시 함께 승선하신 여자 1기사님이 있었습니다. 배에 여자는 저와 그 분 뿐이기도 했고, 정이 많으셔서 언제나 살갑게 대해주셨습니다. 1기사님이 휴가로 먼저 하선하시면서 따뜻한 조언이 담긴 손편지를 주셨는데 그게 남은 승선 실습기간에 많은 위로가 되었고 아직도 마음속 깊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따뜻한 마음과 배려들이 더 훈훈한 선내 분위기를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Q. 외국계 기업이니만큼 외국어 실력이 중요하겠습니다.

A. 외국계 기업임을 떠나 조선, 해운업 자체가 글로벌한 시장이기에 영어 실력을 갖추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느끼는 점은 결국 사람살이는 다 비슷하다라는 것입니다. 언어 실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대화 주제에서 접점을 찾고 다른 문화에 대한 다양성을 존중하며 공감하는 자세가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Q.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요.

 

A. 저는 학창시절 성적이 아주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해외 어학 연수 경험도 전무했고요. 성적도 스펙도 훌륭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미리 닦아둔 길을 이정표 삼아 걷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고민하고 깊이 탐색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분명 주어진 상황과 환경 내에서도 얼마든지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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